사무장병원의 덫에 걸려 넘어지는 의사들
성상규 2011-06-30 14357


`눈 뜨고 당하는 의사들 안타깝다` 
오성일 원장 `사무장 덫에 걸린 분들 너무 많다` 
 
 
 
`사무장병원의 덫에 걸려 넘어지는 의사들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나 자신도 그랬지만 눈 뜨고 당하는 의사가 너무 많다.`

얼마 전 사무장병원에서 진료한 사실을 자진신고하고 의사협회에 SOS를 요청했던 오성일 원장의 말이다.

 
 ▲ 오성일 원장
29일 메디게이트뉴스와 만난 그는 요즘 사무장병원에 발을 들였다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의사들의 문의 전화를 받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라고 했다.

그가 사무장병원에서 발을 빼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주변 동료 의사들이 그에게 대처법을 물어오는 사례가 늘었기 때문이다.

이날 오 원장이 소개한 사연은 이랬다.

70세의 고령 의사 김모 원장은 사무장의 꼬임에 빠져 사무장병원에 들어갔다. '몇 시간만 진료하고, 회진만 돌면 된다' '병원 경영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등 사무장의 달콤한 속삭임에 넘어간 것이다.

그러나 병원 근무를 시작하고 몇 개월 후 김 원장은 해당 병원에 빚도 많고, 직원 임금체불도 심각한 수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병원과 거래했던 의료 소모품 생산 업체에선 미지급금을 달라고 항의가 이어졌다.

그 와중에 사무장은 자신의 명의로 대출을 받을 것을 제안해왔고, 이때부터 김 원장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결국 오 원장에게 SOS를 요청했다.

대구 요양병원 사례는 더 심각했다.

가정의학과 여의사인 A원장은 사무장이 `몇일 후면 법인화될 예정`이라는 말에 속아 취업했다. 사무장병원이라는 사실은 알았지만 의료법인 허가를 받고 있는 중이라는 얘기에 덜컥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취업 후 사무장은 의료법인이 아닌 복지법인으로 허가를 받았다는 소식을 전해왔고, 몇일 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감사로 5000만원 환수에 이어 몇 달 후 계속해서 감사가 이어졌다.

그러는 사이 사무장은 A원장 몰래 병원을 다른 사람에게 인수했고, 심평원과 복지부 합동심사 대상에 올라 결국 사무장병원으로 검찰에 고발당하면서 결국 16억원의 환수금 통보를 받았다.

A원장은 억울해 복지부에 찾아가서 상황을 설명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사무장에게 환수금을 받아서 건강보험공단에 반납하라는 식이었다.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며 무심코 한 선택이 A원장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피부미용 클리닉 사무장의원에 취업한 사례도 있었다. 그 역시 처음에는 '다른 데 신경 안쓰고 진료만 보면된다' '월급은 잘 챙겨주겠다'는 얘기에 아무 생각 없이 진료를 시작했지만 점점 자신 명의로 병원 대출액이 늘어나면서 불안해졌다.

오 원장은 즉시 사무장과 담판을 짓고 병원을 인수할 것을 권했다. 다행히 큰 피해는 막았지만 지금이라도 누군가 문제를 들추면 진료했던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있는 여지가 남아있다.

오 원장은 `70대 고령의 원장은 다행히 큰 피해를 막았지만 대구 요양병원의 A원장은 이미 16억원의 환수금이 떨어진 상태여서 쉽지 않은 상황`이라면서 `나 자신이 그랬듯 사무장 개인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에 나설 것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이 방법은 사실 오 원장 자신이 직접 사무장병원과 싸우면서 배운 노하우.

실제로 그는 병원 부채에 진료비 환수액까지 총 60억원이 넘는 빚에 시달렸지만 이와 같은 방법으로 소송을 진행하면서 현재 20여억원으로 피해액을 대폭 줄였다.

그도 처음에는 요양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성과는 없고 괜히 무고죄로 오히려 소송을 당했다. 그러면서 결국 이런 사례는 민사소송으로 접근하는 편이 유리하다는 사실을 터득한 것이다.

오 원장은 `이미 자신의 진료분에 대해 환수가 시작됐다면 사무장 개인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하라고 알려주고 있다`면서 `이 밖에도 사무장과 담판을 짓고 병원을 당장 인수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고 했다.

그는 `제 경험이 다른 의사들에게 도움이 된다니 기쁘다`면서도 `심각한 경우에는 자살할 위험이 있어 보이는 의사가 있어 안타깝다. 의사 한명의 인생이 망가지는 일은 없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는 사무장병원의 근절 방안으로 의사협회가 하루 빨리 자율징계권을 갖기를 기다리고 있다.

의사협회가 자율징계권을 갖게 되면 사무장병원으로 의심되는 의료기관 의사와 사무장을 청문회에 세운다든지 다양한 방법으로 압박하고, 또 징계를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오 원장은 그런 의미에서 사무장병원 근절에 의사협회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당부했다.

그는 `의사협회 산하의 불법진료특별위원회에서 전국을 순회하며 사무장병원에 대한 정보를 정리하고 심각한 경우 즉각적인 법률적 지원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면서 `예를 들어 법률자문료도 현재 500만원에서 300만원으로 낮춰주는 등 어려움에 처한 회원들에게 힘을 실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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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기자 (
jhlee@medigatenews.com) 기사입력 2011-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