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중인 아고라의 의사 글
성상규 2011-12-28 14377

##논쟁중인 다음 아고라의 의사 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리베이트를 받는것을 옹호할 생각은 없습니다. 없어져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리베이트 관련 모든 책임을 의사에게 뒤집어 씌우고 있기에 반론을 제기하고 싶습니다.

의약품 리베이트를 구조적인 관점에서 접근하고, 어떻게 개선시켜 나갈수 있는지를 얘기하려고 합니다. 

 


저는 현직 내과의사입니다.

요즘 의약품 리베이트 뉴스가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가 되고 있는데,  좀 안타깝네요.. 
일방적으로 의사집단이 매도당하는 것 같아서 속상하기도 하구요.. 
음.. 판도라의 상자를 한번 열어볼까 생각이 들어서 글을 써봅니다. 

허심탄회하게 솔직하게 얘기해 보겠습니다.

저는 리베이트를 단한번도 받아본적이 없고,  계속 유혹하면 당신네 회사약 다 빼버리겠다고 협박해서 거절한 적도 있다는 사실을 먼저 말씀드리고 시작해 보겠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리베이트는 주지도 받지도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좀더 근본적인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리베이트는 제약산업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기인한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제약회사와 정부의 책임이구요.. 

무슨 말이냐면,, 
현재 국내에는 제약회사가 650개가 넘습니다. 
한정된 약을 가지고, 650개 제약회사가 경쟁을 펼친다는 것이죠. 

국내 제약회사중에 스스로 신약개발능력을 갖춘 제약회사는 5개..? 많이 잡아줘도 10개는 될지.. 
결국, 오리지날과 화학구조만 비슷하게 만들어 생동성 시험을 통과한 복제약을 가지고 
650개 제약회사가 경쟁을 하니까, 시장은 과열되고 과당경쟁이 생길수밖에 없습니다. 

이 과정에서 판촉경쟁을 하면서, 의사들에게 돈을 제시하고 처방을 담보받는 리베이트 시스템이 발생한 것이구요. 
제가 진료를 하고 약을 처방하는데.. 지금도 가끔 제약회사 영맨이 와서 선생님 언제든 말씀만 하시라고.. 
유혹하는걸 보면서, 한편으로는 참.. 이분들도.. 경쟁하기 힘든가보다.. 싶은 생각도 들더군요. 어쨌든.. 

이런 과당경쟁이 펼쳐지는 시장구조에서 리베이트는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정부는 제약산업 구조조정을 진작 했어야 하는데도 이런 기형적 구조를 방치해 왔습니다. 
제약회사들이 이렇게 리베이트 공세를 펼칠수있는 이유는, 복제약값이 높게 책정돼있기 때문입니다. 
약값은 공무원들이 정해버립니다. 과거에는 상한값만 정해놓고 시장에 가격을 맡겼지만, 
지금은 모든 약값을 공무원이 강제로 '정해버리는' 것이죠. 

외국의 경우, 
복제약값이 오리지날 약값의 15-30% 라서 국민들이 약을 저렴하게 구입할수 있도록 환경을조성하지만, 
한국은 복제약값이 오리지날 약값의 80% 로 책정되어 있어서 제약회사들의 주머니를 불려줬습니다. 
국내 제약회사들은 이런 자금력을 바탕으로 리베이트 공세를 펼친 셈이죠. 
복제약이 나올때 약값 책정을 잘 받아야 제약회사는 이익이기 때문에, 보건복지부 공무원을 상대로 
약값 책정을 잘 받을수 있도록, 대관로비를 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공무원들이 애초에 약값을 현실적으로 낮게 책정했더라면, 리베이트 구조가 이렇게 되진 않았겠지만, 
정부는 이런 상황을 묵인해줬습니다. 국내제약산업 육성이라는 이유로 말이죠. 

H 약품 같은 회사가  대표적인 리베이트 회사입니다. (거의 모든 회사가 리베이트를 제공합니다.) 
의약분업 초창기만 하더라도  10위권이었던 회사가, 공격적인 리베이트 공세를 펼치면서 10년만에 
제약업계 3-4위 수준까지 올라왔습니다.  저는 잘 모릅니다만, 여기저기서 얘기를 들어보면, 
정말 화려한 리베이트 공세를 펼쳤던것 같더군요.. 
덕분에 다른 제약회사들 역시 판촉비용으로 리베이트 공세를 펼치면서  제약회사간 경쟁은 불이 붙었고, 
시장은 혼탁한 양상으로 악화됐습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우리회사 약 써주면 돈을 준다는데 이것을 마다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습니다. 
얼토당토 않은 약은 돈을준다고해도 안쓰지만, 비슷한 효과라면 마케팅하는 회사제품을 쓰는 것이죠. 
예전처럼 의사들의 수입이 보장된 것도 아니고, 빚을 몇억씩 내서 개원하는 의사들이 대부분이고, 
출혈경쟁까지 해가면서 개원가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현실에서.. 의사들은 이런 유혹을 견디기 힘듭니다. 

정부가 의료수가를 현실적으로만 책정해주더라도, 의사들은 한결 편하게 환자진료에만 매진할 수 있을텐데.. 
한국의 의료수가는 유럽에서 가장 사회주의적인 공공의료시스템을 채택한 영국은 물론이고, 
인도, 중국보다도 저렴한 나라입니다. 중국내시경 수가가 6만원인데 한국은 3만4천원이죠. 

의사들이 바라는게 돈많이 벌어서 부자 되는 걸까요..? 아닙니다. 
정당한 진료와 처방에도 건강보험공단, 심평원에서 '삭감'을 하면서 의사를 괴롭히는 현실을 벗어나.. 
제발 아무 생각없이 맘편하게 환자만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입니다.. 

소화기내과를 공부하다보면, 고개를 갸우뚱 할 때가 있습니다. 
문제있던 환자에 대해.. 대장내시경을 얼마주기로 추적관찰 해야하는가.. 라는 문제에 대해, 
3년 5년마다 하라고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 생각엔 1년마다 해야할것 같은데 왜이렇지..? 
라고 살펴보면, 대장내시경 비용이 비싸기 때문에 자주 검사를 시행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라는.. 
내용이 쓰여 있더군요. 참..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과서의 기준을 미국에서 정해놓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최소한 의사들이 환자진료에만 충실해도 수입에 크게 신경쓰지 않고 수긍할만큼은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현실은 과당출혈경쟁에 생존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정부는 나몰라라 합니다. 
영국처럼 아예 정부가 의대교육비용부터 개원후 의료사고까지 모두 관리해주는것도 아니고, 
미국처럼 모든걸 시장에 맡기는대신에, 의료수가를 높게 책정해주는 것도 아니고.. 
한국정부는 모든 책임과 의무, 비용은 의사에게 떠넘겨놓고, 
의료를 위해 해준게 아무것도 없는 정부는 권리만을 행사하고 있고, 의사의 살을 깎아먹으면서 
국민에게 생색은 공무원들이 내고 있습니다. 정말.. 참담한 기분이 드는게 요즘 의사들입니다. 
노예도 이런 노예가 없는것이죠. 


 

 

* 미국은 제외하더라도, 의료수가가 저렴해서 서양인들의 의료관광이 많다는 인도보다도 훨씬 적습니다.

   국민소득을 감안해보면, 한국의 의료수가가 얼마나 낮게 책정되어 있는지 알수있습니다.


 

얼마전 ESD (조기위암을 수술없이 내시경으로 도려내는 고난이도 시술) 의료수가가 너무 낮게 책정되서

대학병원 위암환자 시술이 중단되고 난리가 났을때도 알려졌지만, 내시경 칼값만 40만원이 넘는데

의료수가는 식도 24만원, 대장 33만원으로 3만원씩 인상하는걸로 최종확정됐습니다.

ESD 는 고난도 시술인데 .. 인도에서 위내시경하는 가격에 시술하라는 것이죠.

한국의사들은 원가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시술하는 셈이죠. 

박정희 정권에서 국민건강보험을 출범시키고, 전국민 강제로 가입시키는 당연지정제를 도입할 때, 
의사들은 수입이 많을 때였고, 의료제도 변화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90년대를 지나 2천년대로 넘어오면서 의료계는 생존경쟁을 펼치는 상황이 됐고, 
낮은 수가에도 큰 반발없이 지내온 것은, 리베이트 수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부역시 너네는 리베이트 있지 않느냐.. 그러니 의료수가 부분은 양해해라.. 는 암묵적인 시선이 있었고 
의료계 역시 이부분에서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분위기가 있었던것 같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면서 여러가지 입장차이가 생겨나게 됐습니다. 
자본가인 장년층 의사들과 달리, 신규로 배출된 젊은 의사들은 생존경쟁을 펼치는 상황이 된 것이죠. 
여기에서 리베이트 수입에 의존하는 부분도 분명히 있었던 게 현실인데, 
건강보험공단이 의료보험재정 악화를 이유로 전방위적인 압박을 펼쳤고, 보건복지부 역시 .. 
의료계 리베이트 근절을 리베이트 쌍벌제 도입으로 확실히 하려고 하는 국면을 맞게 됐습니다. 

리베이트 쌍벌제 (주는 제약회사만 처벌받던 것에서, 받는 의사도 처벌한다로 개선된 법안) 를 
다름아닌 H 약품에서 주도적으로 나서서 시행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료계의 공분을 샀습니다. 
회사 키울려고 리베이트를 공격적으로 제공하면서 회사를 키우고 시장을 혼탁하게 만든 회사가 오히려. 
회사를 키워준 의사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몰아넣었기 때문이죠.  

리베이트 쌍벌제가 통과된 후에는, 리베이트 받으면 의사면허가 위태로워지기 때문에.. 
간이 배밖으로 나오지 않고는 받기 힘든 환경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제가 아는 일부 의사들도 리베이트를 받았었는데, 지금은 거의 전부가 
받지않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리베이트를 근절하는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그러면 그만큼 의료수가를 올려서 현실화시켜줘야 
의료계도 동의가 되는 것이고, 밸런스가 맞는 것입니다. 
리베이트 규모만큼 약값을 인하해서 정부가 밸런스를 맞추었지만, 
거기에서 Save 된 정부지출 약제비는 의료수가 현실화로 이어져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고.. 
오히려 공무원들 보너스 잔치로 끝날것 같습니다. 

리베이트 근절-> 약값인하 -> 보험재정 확충 -> 의료수가 현실화.. 로 선순환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건강보험재정이 나쁘다는 핑계로 의료수가를 묶어놓고 있는 것이죠. 
그러나, 2011년 상반기에만 건강보험재정은 9천억 흑자가 났습니다. ;; 

의사들이 자꾸 불만인 것은, 일은 의사가 다하는데, 자꾸 엉뚱한 곳에 돈을 풀어주기 때문입니다. 
사실 의사들이 타 직능과 싸울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타 직능도 그분들의 정당한 댓가를 받는게 맞다고 보구요. 그러나, 의사들이 타 직능들과 각을 세우는 이유는, 
한정된 보험재정 안에서 제로섬 게임 양상으로 재정이 쓰이기 때문이고, 
의료수가 인상은 1%도 간신히 하는데, 타 직능에게 지불하는 비용은 많이 인상시켜주기 때문에 
본의아니게 타 직업군과 각을 세우게 되는 것 같습니다. 

결국, 정부가 의사- 타 직능간에 싸움 붙여놓고, 뒤에서 싸움구경하면서 이긴놈은 상주고, 진놈은 각오해라.. 
라는 식으로 보고 있어서.. 더 직능간 갈등이 생기는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리베이트를 근절시킨다면, 의료수가를 좀더 현실화해줘야 하는데.. 
정부는 의료계가 모든 리베이트의 주범이라는 식으로, 의사를 범죄자처럼 만들고 있고, 
모든 책임을 의사에게 떠밀면서 .. 의사들을 매도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을 만든 제약회사와 공무원들은 비겁하게 뒤에 숨어서 언론 플레이로 의사때리기만 하고 있구요.


리베이트를 받는게 잘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리베이트 근절에 정부에 협조하고 대신에 의료수가를 현실적으로 올려야 한다는 의견을 주장해 왔습니다만, 
모든 잘못을 의사에게 뒤집어 씌우는 현실이 참 안타깝네요... 

낮은 의료수가로 의사들을 생존경쟁에 몰아넣을 수록, 환자들이 받는 의료의 질이 떨어져 간다는걸 
국민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더 좋은 약을 쓰고 싶어도, 정부에서 약처방을 저가약위주로 바꿔라면서 
계속 고가의 약을 처방하면 현장실사 나가서 행정처분 하겠다...라고 협박해 옵니다. 

보건복지부, 건강보험공단, 심사평가원이 얼마나 깡패같은지.. 아마 국민들은 잘 모를 겁니다. 
건강보험공단 같은 경우, 4급이상 고위공무원이 50%가 넘어가고,  최근 몇년간 임금인상율이 10%가 넘어간다는 사실에.. 의사들은 분노하게 됩니다.

 

 

 

결론 : 리베이트는 정당화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의사들의 책임 역시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잘못을 의사에게만 돌리는 것은 부당합니다.

 

0.의약품 리베이트는,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제약산업의 기형적인 구조로 리베이트 시스템이 발생한 것이죠.

1.리베이트 쌍벌제로 리베이트는 확실히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의사들도 리베이트보다 수가인상을 원합니다.

2.리베이트 근절-> 약값 인하 -> 보험재정 절감 -> 의료수가 현실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3.리베이트 발생의 근본원인인 복제약값을 인하하고,  제약산업의 구조조정을 시행해야합니다.

4.현재의 리베이트 시스템을 방치하고 조장해온 공무원과 제약회사는 비겁하게 숨지말고 변화에 앞장서야 합니다.

 

 

 - 이 글은 마음껏 퍼가셔도 됩니다. -

- 약사 관련 언급은 모두 삭제했으니까, 논점을 흐리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0&articleId=9564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