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 밥값 6년째 제자리 `빚 내서 환자식 제공` |기획|생색은 복지부, 피해는 병원…환자 도덕적 해이도 심각 기사입력 2012-07-13 07:13 이지현 기자 (news@medicaltimes.com)
보건복지부가 식대 급여화 제도를 시행한 지 6년째. 병원계가 병원 식대를 보장성 강화로 보는 게 정당한가에 대한 깊은 회의에 빠졌다.
단순히 '식대'라는 비급여 항목이 사라진 것에 대한 불만일까. 아니면 정부의 선심성 정책으로 낭비되고 있는 건보 재정에 대한 우려일까.
`고정비는 오르는데 식대 급여는 6년째 제자리`
정부는 지난 2006년 6월부터 환자 식대를 비급여에서 급여로 전환했다. 당시 책정된 한끼 식대 급여는 기본식 3390원, 치료식 4030원. 그후 6년이 흘렀지만 수가는 여전히 제자리다.
최근 직원 인건비가 인상되고 지난 2010년 물가 파동으로 채소 값이 폭등했지만 식대 급여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입원실을 운영하는 병원들은 일정한 비용으로 식사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J중소병원장은 `6년 전 대비 식자재비는 물론 인건비가 30% 가량 인상됐는데 환자 식대만 수년 째 변함이 없을 수 있느냐`고 꼬집었다.
게다가 병상을 가득 채우지 못하는 병원은 입원실을 유지하기 더 힘들어졌다.
B중소병원장은 `병원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이상 입원 환자가 줄어도 인건비, 식자재비 등 고정비를 줄일 수는 없다`면서 `가령 100병상 중 50병상만 채워도 영양사, 조리사에 대한 인건비는 변함이 없다. 결국 환자가 감소하고 있는 병원은 빚을 내서 환자식을 만들고 있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식당 직원들은 주말, 공휴일까지 일해야 하는 인력으로 인건비 부담이 상당하다`고 토로했다.
지난 해 식당 운영에 부담을 느낀 지방의 모 대학병원이 식당 직원 50여명을 대거 해고한 사건은 이 같은 병원의 경영 압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다.
당시 병원 노조 측은 복직을 촉구했지만 병원 측은 식대 단가를 맞추기 위해 위탁 운영방식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Y산부인과병원장은 `차라리 식대에 대해서는 병원에게 맡기로 자유롭게 운영하는 편이 낫다`면서 `이제라도 제자리로 되돌려야 한다. 환자식대가 과연 보장성 강화 요인이 될 수 있는지 다시 고민해야 한다`고 환기시켰다.
`잘못된 정책, 편법·서류 조작 부추겨`
▲ 본 사진은 기사내용과 무관함 이처럼 정부의 무리한 보장성 강화 정책에 견디지 못한 병원들은 급기야 편법을 자행하기에 이르렀다.
A병원은 몇 달째 영양사, 조리사가 서류상에만 존재한다. 직원들의 급여인상 요구에 거절하자 퇴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A병원은 여전히 영양사, 조리사에 대한 식대 가산료를 청구하고 있다.
불법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당장 식대를 보존하려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기본식에 대한 수가는 3390원으로, 병의원이 식당을 직영으로 운영하면 620원이 가산된다. 또 영양사를 두면 550원, 조리사를 채용하면 500원의 가산액이 적용된다. 만약 3가지 항목을 모두 갖출 경우 환자 한끼 식사에 대한 수가는 5060원으로 올라간다.
환자는 기본 식대의 20%, 가산액에 대해서는 50%만 본인부담하면 된다. 즉, 기본식 한끼 당 환자가 부담하는 금액은 1543원, 나머지는 건강보험 재정으로 충당하는 것이다.
영양사, 조리사, 직영 식단 운영 등 가산 적용 여부에 따라 한끼 식사에 1670원, 열흘이면 5만 100원의 격차가 발생하는 셈이다. 가령, 입원 환자가 100명이라고 치면 가산 적용 여부에 따라 열흘 간 약 500만원 가량의 격차가 생긴다.
이 같은 이유로 A병원은 허위 및 부당청구에 따른 환수를 감수하고서라도 영양사와 조리사가 존재하는 것처럼 속이고 있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B병원장은 `영양사를 두는 이유는 환자의 식단의 질을 높이기 위함인데 점차 식대 단가를 보존하기 위한 대안으로 전락했다`면서 `당초 취지가 퇴색한지 오래`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기본적인 식재료에 대한 지원도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영양사, 조리사 등 2차적인 부분까지 확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환자의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는 식대 급여화`
▲ 본 사진은 기사내용과 무관함 또한 식대 급여화는 환자들이 쉽게 입원을 결정해 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환자식대에 대한 부담이 사라지면서 의료 접근성도 높아졌지만, 그만큼 불필요한 입원도 늘어났을 수 있다는 얘기다.
지방의 K요양병원장은 `노인 환자들은 농한기인 겨울이면 입원을 희망하는 사례가 많다`면서 `식대에 대한 부담이 크게 줄면서 쉽게 입원을 결정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털어놨다.
식대 급여화 이전에는 환자식 한끼 당 약 8천~1만원의 비용을 부담해야 하지만 급여화 된 이후에는 약 1500원 수준이기 때문에 경제적 부담이 크게 줄어든 게 사실이다.
K병원 관계자는 `정부는 정책을 시행하기에 앞서 예상했어야 했다`면서 `전형적인 전시행정이 결국 건보재정을 위협하고 환자식의 하향평준화를 결과를 초래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식대 급여화가 건보재정은 물론 병원 재정을 압박하는 잘못된 정책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되돌리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병원협회 정영호 정책위원장은 `병원은 6년간 식대 급여가 인상되지 않아 힘들고, 정부는 재정 압박을 받고 있지만 과거로 되돌리는 것은 어렵다`면서 `이미 시작한 제도를 되돌린다면 복지 후퇴가 심각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이어 `식대 급여화에 따른 건보재정 부담은 고령화 사회로 갈수록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도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 인지하고 있지만 지켜보고만 있는 상태다.
복지부 관계자는 `환자 식대 급여화에 따른 재정적인 부담에 대해서는 통감하고 있다`면서도 `아직까지 뚜렷한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본 기사는 메디칼타임즈 어플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기사입력 2012-07-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