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의료에 대한 또 다른 시각
신창록 2013-09-30 14373

 

원격의료 제도화, 무엇이 문제인가?



아주대학교 인문사회의학과 교수 허윤정

 前 민주통합당 정책위원회 보건복지 수석전문위원 

    前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사회정책실 선임연구원



원격의료 추진은 경제부처의 로드맵

원격의료가 의료계의 주요 이슈로 부활했다. 지난 정부 시기인 2009년 7월 보건복지부는 ‘의료인과 환자 간의 원격의료’ 등 의료서비스 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의료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였으나 당시 18대 국회의 반대로 원격의료 추진은 좌절되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첫 해부터 원격의료 활성화가 정부의 우선순위 정책으로 추진되고 있다. 현 정부의 ‘원격의료’ 정책은 정부 출범 초기부터 기획재정부의 주도로 추진되어, 지난 7월 11일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관계부처 합동으로 「규제 개선 중심의 2단계 투자활성화 대책」 방안의 하나로 ‘U-health 관련 6건의 규제 및 제도 개선’으로 시작되었다. 또한 지난 8월 7일 ‘제1차 경제·민생활성화 대책회의 및 2013년 제15차 경제관계 장관회의’ 에서 현오석 부총리가 투자 활성화 방안으로 의료관광 광고 허용, 의료법인 해외투자 근거규정 마련을 통한 의료관광 활성화를 위한 제도개선과 의사 환자 간 원격의료 추진방안을 연내 마련하겠다고 밝힘으로 재점화 되었다. 이와 같은 ‘원격의료 활성화’ 추진에 대해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7월 9일 기자회견을 통해 원천적으로 반대하고 정부가 추진할 경우 강력히 저항할 것이라는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결국 현 정부가 추진하는 원격의료는 기획재정부가 추진하겠다고 밝힌 로드맵 달성을 위해 보건복지부가 법률 개정 등 제도화를 추진하는 순차적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2013년 정기국회의 주요 이슈로 등장할 ‘원격의료’에 대해 꼼꼼하게 살펴보아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원격의료의 현주소

  
 보건복지부는 ‘원격의료’ 입법화 추진의 배경을 “활성화가 되든, 활성화가 되지 않든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주장과 같이 우리나라에서 원격의료가 ‘원천적으로 금지’되고 있는지 살펴보자.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법 제정과 관계없이 이미 정부는 다양한 원격의료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보건산업정책 설명자료(2013.08.20)에서 글로벌 U-health 사업으로 해외환자 후속 치료 등 Post care 강화를 위한 해외 원격의료센터 설치를 2012년 8개에서 2013년에 10개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혔고, 여기에는 국내 Big 5 등 25개 의료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또한 의료취약 지역에 대한 원격의료 서비스 제공으로 의료불평등을 해소하겠다고 한다. 법무부는 지난 2009년 4월 ‘교정시설 수용자, 서울대병원 원격진료 받는다’는 보도자료를 통해 서울대병원 의료진이 교정시설 수용자를 원격화상으로 진료하기로 서울대병원과 MOU를 체결하였다고 밝혔다. 최근 의협이 제기한 원격의료와 원격진료의 정의를 고려해도 이미 지난 정부가 의료산업 활성화를 추진하는 시기부터 여러 정부부처에서 다양한 원격의료 사업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당시 법무부는 안양교도소 등 전국 8개 교정시설 인근에 위치한 병원과 원격진료를 추진하면서, 2008년도에 3,009건의 원격진료를 실시하였으며 이중 정신과와 정형외과 진료가 73%를 차지했다고 밝히고 있다. 추가로 2009년에 4개의 교정기관에 원격진료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법무부 모두 의료법 개정이 없이도 원격의료에 해당하는 사업을 과거부터 추진해왔고 또 현재도 진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뒤늦게 원격의료 관련 법률을 개정하겠다고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만약 보건복지부와 법무부 등이 그 동안 추진해왔던 원격의료를 정부의 시범사업이라고 한다면, 시범사업을 계속 확대하는 것과 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은 무엇이 어떻게 다른 것인가?



원격의료의 찬반을 떠나 법적 논리적 합리성 필요

정부의 원격의료 추진의지와 로드맵이 가시화 되면서 바이오페스, 비트컴퓨터, 유비케어 등과 같은 헬스케어 관련 회사들의 주가가 크게 수혜를 누린다고 한다. 정부의 정책 방향지시등 만으로도 주가가 들썩이는 현실은 경계해야 한다. 원격의료의 추진은 이념논쟁이 아니다. 혹여라도 찬반 여론의 편 가르기, 의료계의 반대 목소리 등으로 이미 결론을 내려놓은 찬반양론이 대립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면 원격의료의 내용과 본질에 접근하는 건강한 논의는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의료정보화를 산업화로 연계할 수 있는 인프라를 세계에서 가장 훌륭하게 구축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원격의료 추진 논의는 현실을 직시하고 차분하고 성숙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원격의료 추진의 생산적 논의를 위해 몇 가지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다. 먼저 원격의료가 무엇이며, 누구를 위해 어떤 목적에서 추진되어야 하는지 정확하게 규정하고 이를 공개해야 한다. 의료 취약지 대상자들과 재소자들은 원격진료와 같은 서비스보다 의사들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고 진찰과정의 스킨쉽 등을 통해 이미 절반의 치유를 경험하지는 않을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원격의료는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 결국 어떤 목적으로 누구를 상대로 추진하려는 정책인지가 분명해야 합리적인 논의가 가능할 것이다. 결코 원격의료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정말 의료 취약지의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책이라면 무엇이 최선인지 냉정한 점검과 논의가 필요하다.



개인에게 가장 민감한 건강정보 보호를 위한 시스템도 필요
  
개인에게 가장 민감한 사생활 정보에 해당하는 건강정보가 원격의료 과정에서 가감 없이 유통된다면 이 또한 우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의 건강정보가 다양한 의료기기 등을 통해 전달되는 과정에서 목적 이외의 용도로 사용되지 않을 수 있는 제도적인 시스템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정부는 U-health 추진으로 주요 선진국의 사례를 들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이미 1996년 8월 연방의회에서 “일정한 의료정보를 전자적으로 전송할 때의 기준과 요건을 정하여 의료정보시스템을 확립하는 것을 지원하기 위해 「HIPAA(Health Insurance Portability and Accountability Act - 건강보험 이전가능성 및 책임에 관한 법)」를 제정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 법을 통해 개인 의료정보를 어떻게 사용하고 공개하는지, 누구와 공유하는지, 정보보호를 위한 대책은 무엇인지, 수정 및 외부 유출에 대한 사전 통제 권리가 있음을 정보주체에게 통보하는 개인정보보호 관행 통보서 제공 규정 등을 마련하고 있어 의료소비자의 권리를 확대하였다. 일본도 2003년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2005년 4월부터 전면적으로 시행하고 있으며, 특히 「의료·개호관계 사업자에 있어서의 개인정보의 적절한 취급을 위한 가이드 라인」이 책정되어 공표, 시행되고 있다. 이처럼 원격의료 활성화와 의료정보의 자유로운 유통을 통한 의료산업화 추진은 모두 야누스의 얼굴과 같아서 한편에서 건강정보 보호라는 안전장치가 작동해야 자유로운 정보 유통도 보장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17대 국회에서 정부 입법으로 추진되었던 『건강정보 보호 및 관리 운영에 관한 법률』 등의 추진은 미룬 채, 원격의료 추진과 의료산업화 및 투자활성화로 국부를 창출하겠다고 하는 것은 균형 잡힌 논의는 아닐 것이다. 대한민국은 모든 국민의 건강정보가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통해 집중되고 유통되며, 개별적 의료기관들의 의료정보화는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른다. 그러나 표준화된 의료정보의 부재로 인해 의료정보를 기반으로 하는 정보공개와 통계분석 등이 매우 제한적이고 자의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또한 의료정보를 기반으로 수행 가능한 다양한 연구도 제한적이다. 다행히 최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정보공개에 적극적이고, 국민건강보험공단도 빅데이터 활용 논의가 진행 중이다. 이러한 논의 역시 국민들의 이해와 수용이 가능한 정보보호 안전망으로 출발해야 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공약이었던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와 더불어 올해 정기국회에서 논의될 ‘원격의료 제도화’ 는 찬반양론의 이념적 편 가르기로 끝나는 논쟁이 아니기를 바란다. 그 목적과 대상, 방법 등 다양한 이슈를 합리적으로 토론하고 제도적 결함의 보완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다른 방법은 없는지 냉정하고 성숙한 논의가 진행되기를 바란다.


                                    출처: e-health policy      발행처: 서울대학병원 대외정책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