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국민 지정제폐지 수용 준비됐다"
이정돈 2008-07-05 14349
"의사·국민 지정제폐지 수용 준비됐다"
"건강보험 계약제의 개선방안" 주제발표 및 토론요지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6일 연구소 개소 6주년을 맞아 3일 의협 동아홀에서 "의료정책포럼 건강보험 계약제의 개선방안:당연지정제와 수가계약제를 중심으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회에서는 법적으로 위헌 소지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폐지 필요성이 적극 제기됐다. 수가계약 방식에 대한 일정한 룰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눈길을 끌었다.

의협은 이번 토론회를 통해 30여년이 넘게 운영되며 많은 문제점들을 드러내고 있는 건강보험체계의 개선이 시급하다는 메시지를 정부와 시민사회에 전달했다<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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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선줄 변호사 좌), 김계현 책임연구원 우)

주제발표:황선줄 변호사(법무법인 세종), 김계현 책임연구원(의협 의료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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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지영건 포천중문의대 교수, 조윤미 상임위원, 사공진 한양대 교수, 전철수 의협 보험부회장, 이영찬 보건복지가족부 건강보험정책관, 이준석 변호사

지정토론:지영건 포천중문의대 교수(예방의학), 조윤미 상임위원(녹색소비자연대), 사공진 한양대 교수(경제학), 전철수 의협 보험부회장, 이영찬 보건복지가족부 건강보험정책관, 이준석 변호사(법률사무소 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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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줄: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는 의료소비자에게 획일화된 의료서비스만 받을 수 있도록 해 의료보비자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하고 요양기관에는 규모와 질과는 상관없이 동일하게 수가를 적용하는 등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볼 수 있다.

또 의료인은 당연지정제로 인해 직업선택의 자유를 제한받고 규격화된 의료만을 시술할 수밖에 없어 학문의 자유를 침해받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국가가 공익목적에 의해 의료인과 의료시설을 강제동원하는 면도 있어 재산권의 침해 여지도 있다. 특히 헌법은 개인의 능력과 창의를 발휘하여 개성신장을 추구할 기회를 보장하고 있는데 당연지정제는 이런 시장경제질서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요양급여비용 계약제의 대표자 선정과 합의과정 등도 많은 법적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어 전반적인 개선 필요성이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런 많은 위헌 여지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는 2002년 당연지정제 합헌 결정을 내렸다.

위헌적인 요소가 있지만 당연지정제를 폐지가 가져올 수 있는 사회적인 파급효과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시대는 변하고 있다. 의료접근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수 십년 전 의료보험제도를 만들던 당시의 생각에서 벗어나 유연한 생각들을 가져 볼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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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현: 의사 1002명을 대상으로 요양기관 계약제에 대한 의견을 지난 4월 조사해 봤다.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67.3%가 요양기관 계약제 필요성에 동감을 나타냈으며 82.3%가 요양기관 계약제를 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64.5%는 당연지정제 체제에 남으려는 민간의료기관은 의협과 같은 중앙회를 대리인으로 내세워 보험자와 계약하면 된다고 답했다. 요양기관 참여 의사와 건강보험 내용 전반을 계약의 범위로 잡는 것이 적정하다고 답한 의사가 80.3%에 달했다.

같은 달 일반 시민들 102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서도 79.1%가 고급의료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대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연지정제를 풀어 계약제 방식으로 갈 경우 의사도 시민들도 어느 정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당연지정제가 폐지되면 계약을 포기하는 의료기관이 많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의료기관을 국공립기관과 민간기관을 구분해 국공립기관은 당연지정제를 유지하고, 민간의료기관은 요양계약을 선택하게 하는 방식으로 우려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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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영건: 말이 수가계약제라 하지만 수가계약제를 실시한 후 한번 뻬고는 수가 계약을 체결하지 못했다. 당연한 결과다. 말이 협상이지 공급자나 소비자 모두 협상테이블에서 "딜(deal)"할 게 별로 없다.

환산점수를 얼마로 할 것인지 만을 두고 협상하다 보니 소모적인 논쟁만 하게 된다. 미국은 상대가치점수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로 협상을 하지 환산점수만을 두고 협상하지 않는다.

또 물가상승률 같은 지표를 매해 자동적으로 수가인상분에 반영한다. 물론 총량 규제의 개념은 있다. 하지만 매년 수가인상지표들이 시스템적으로 정해져 있어 협상이 쉽다.

독일은 공급자 단체인 보험협회와 보험자가 총액 계약을 한다. 점수당 단가 즉 한산지수 등을 두고 협상하는 게 아니다. 총량이 정해지면 보험협회 내부에서 나눌 뿐이다.

우리는 미국에서 상대가치 개념을 가져오고 독일에서 수가 계약 방식을 들여왔지만 두 제도가 혼재된 채 좋은 효과를 못 내고 있다. 우리도 원활한 협상을 위해서 기본적인 룰을 정해야 한다.

예를 들면 물가상승률 등 몇 가지 지표는 자동적으로 수가에 반영하는 시스템을 토대로 해서 그 밖의 것들을 공급자와 보험자끼리 협상하게 하는 것이다.

이제 유형별 수가계약을 하며 먼저 계약하는 단체에 돈 더 주겠다하는 식의 협상방식은 하면 안된다. 공정한 룰을 만들어서 이를 준수하고 운영해 보는 경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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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미: 소비자는 건강보험에 강제가입한다. 그런데 당연지정제가 폐지되면 소비자의 의료기관 이용이 제한받을 수 있다. 형평성의 차이가 생긴다. 소비자는 기본적으로 모든 의료기관을 이용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소비자측도 강제지정제 폐지를 몇 가지 전제 아래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선 의료기관의 접근성이 현저히 떨어져서는 안되고 질적 평가를 통해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을 선택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어야 한다.

당연지정제에서 벗어난 의료기관의 의료서비스료에 대한 투명한 공개도 전제돼야 한다. 하여간 이런 논의들을 위해서는 최소한의 수가 보장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의료 수가가 저수가였고 합리적인 근거보다는 정치적인 이유로 수가가 결정된 측면이 있었다는 것은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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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공진: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이 당연지정제 유지 원칙을 천명했다. 처음에는 정부가 당연지정제 폐지 추진 등을 검토했지만 의지 약화되고 힘이 많이 빠졌다. 일반인들은 당연지정제 페지가 기관의 폐지가 아니라 사람이 폐지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일부 세력들이 당연지정제가 폐지되면 국민들이 공보험에서 배제된다고 말하고 있는 데 말도 안되는 괴담이다. 유수의 시민단체들은 이런 사실 알면서도 방치하고 있다. 비열한 짓이다. 당연지정제는 적정 의료기관을 확보하기 위해 생겨난 제도다.

하지만 현재 일부 지역에서는 공급과잉 현상도 보인다. 우리나라는 이미 충분한 의료기관 확보했다고 생각한다. 당연지정제의 임무는 완수됐다. 일부에서 우려하는 것과는 달리 당연지정제가 폐지되고 대부분의 의료기관은 정부와 계약을 할 것이다.

2003년 한국갤럽이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의사의 10%만이 민영보험 환자만을 진료하는 의료기관을 운영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대부분의 의료기관들이 정부와의 계약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 왜 당연지정제를 폐지하려 하는지 묻는 분들이 있다. 그건 비합리적인 규제를 철폐하는 것이란 의미가 있어서다. 전 세계적으로도 계약제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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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수: 국민건강권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뭔지 생각해 보자. 당연지정제 폐지는 소비자의 의료기관 선택권을 존중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방향이 있다. 당연지정제가 폐지되면 의료기관간의 서비스 경쟁이 일어난다.

무엇보다 당연지정제의 시행 방식이 강제적이고 억압적이라는 것이 폐지의 이유가 될 수 있다. 비정상적이고 비민주적인 당연지정제의 시행으로 보건의료제도는 첫 단추부터 잘못 채워졌다.

첫 단추가 이러니 앞으로 강제적인 토대 위에 전체 제도의 틀에 잘못 형성될 것이다. 합리성 없이 행정편의주의에 치우쳐 만들어진 제도다. 결국 의사 뿐 아니라 이런 제도 아래에서는 환자도 피해를 입는다.

국가가 강제적으로 의료기관을 소유하고 저수가로 통제하다보니 의료기관이 비급여를 좇게 된다. 비급여를 제외한 필수 진료에만 기대 운영하면 의료기관이 망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의료서비스 체계가 혼탁해지고 어려워진다.

시스템의 왜곡이 굉장하다. 국민들은 저수가로 인한 질 낮은 서비스에 불만이 높아졌고 전체 진료비에서 보장하는 급여보다 비급여 영역이 큰 폭으로 커져 국민들의 실질적인 부담은 가중됐다.

모두가 피해자다. 악순환이다. 당연지정제 폐지는 의료인의 우월적인 지위를 차지하겠다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아니다. 정부이든, 의사든 상호 대등한 관계에서 서로 존중하는 관계가 되자는 말이다.

새로운 계약시스템이 확립되면 이를 토대로 새로운 의료시스템을 설계해야 한다. 의료는 이념이 아니라 서비스다. 의료는 공공재라는 주장이 있는데 이는 의료서비스 자체가 공공재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산업 측면에서 보면 의료 역시 구매가 가능한 서비스상품으로 볼 구석이 있다. 많은 사람들의 차이와 개별적 선택권을 보장해줘야 한다. 시장과 공공의 조화가 필요하다. 시장만이 기능하면 공공부문이 왜곡되는 경향이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이제 전문가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의료서비스의 종류 보다 재정운영의 다양성을 확보해 개인의 선택권을 보장하고 민간보험과 공공보험의 조화와 경쟁을 도입하는 등 의료시스템의 근원적인 개편 방향을 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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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찬: 지난 2002년 헌법재판소의 당연지정제 합헌 결정을 보고 법적으로 (정부가) 지지는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법에만 기대서는 안 될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법적 자구에 집착하기 보다 국민이 지향하는 바가 어떤 것인지 살펴야 한다.

우선 정부가 왜 당연지정제를 유지할 밖에 없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당연지정제는 우리나라가 복지국가를 일궈내면서 만든 제도다. 사회적인 연대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이런 전제를 생각하면 당연지정제가 폐지돼 가져올 결과들은 크게 우련된다.

국민을 1등 국민과 2등 국민으로 나눈다는 인식을 줄 수도 있다. 특히 당연지정제 폐지가 건강보험제도를 바뀌기 위한 교두보로 얘기되는 것이라면 국민들 더욱 당연지정제 폐지를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국민 역시 건강보험제도에 대해 불만있지만 지속적인 발전을 원하는 것이지 건강보험제의 기본 틀을 바꾸라는 것은 아니다.

최근 정부가 외국 환자 유치와 같은 의료산업화를 신경쓰고 있다. 이를 위해서도  당연지정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하기도 하는데 복지부가 검토한 결과, 외국 환자유치에 당연지정제가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독일이 1870년대 처음 건강보험제도를 만들었을 때 의사들은 그 체제로 들어가기 위해 노력 많이 했다. 영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1940년대 NHS를 만드는 전제조건으로 의사들이 제시한 것이 의사는 누구나 NHS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연지정제 유지로 의사들도 많은 도움 받고 있다. 환자만 보면 안정적으로 진료비가 지급된다. 의사가 당연지정제 폐지를 주장하는 것에 대해 이해가 전혀 안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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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당장은 어렵더라도 사회적 분위기가 성숙되면 당연지정제 폐지를 공론화할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의료인의 직업 수행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고 설비 투자와 같은 투입 부분은 고려안하고 비용을 획일화시키는 것도 문제다.

높은 수준의 질 경쟁을 시키기보다 전제적인 수준을 하향 평준화시킬 우려가 있다. 의료는 정형화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전적으로 의사의 재량 행위다. 복지부가 고시로 의료 행위를 간섭하는 것은 의료법을 위반하는 행위로도 볼 수 있다.

결국 모두가 만족하지 못하는 현 당연지정제의 폐지를 고민해 볼 시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의협신문 최승원기자 choisw@kma.org  
입력: 2008.07.04 17: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