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분명처방 강제할수도 해서도 안된다"
이정돈 2008-07-19 14361
"성분명처방 강제할수도 해서도 안된다"
[인터뷰] 성분명처방 시범사업을 끝낸 강재규 국립의료원장

성분명처방 시범사업이 우여곡절 끝에 마무리됐다. 그동안 시범사업의 수행기관인 국립의료원은 성분명처방을 반대하는 의료계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동료 의사들로부터 "사퇴하라"는 비난까지 들어가며 마음 고생이 심했던 강재규 원장을 만나 시범사업을 둘러싼 논란과 성분명처방에 대한 소신, 그리고 시범사업에 얽힌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성분명처방 시범사업은 지난해 9월 17일부터 올해 6월 30일까지 10개월여동안 전문의약품 5개 성분을 포함 20개 성분 32개 품목을 대상으로 진행됐으며, 10개월 평균 처방률은 38.5%로 알려졌다.

 

-성분명처방을 경험해봤는데 어떤 생각이 들었나. 성분명처방이 도입돼야 한다고 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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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한 결론은 "지금은 안 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내가 성분명처방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고 오해하고 있지만, 처음부터 성분명처방은 강제할 수도 없고 강제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리피토 같은 인기 품목의 경우 제네릭이 100여개가 넘는데, 처방할 때 마다 환자가 다른 약을 복용하게 된다면 어떻게 제대로 치료할 수 있겠나.

다만 장기적으로는 안전성이 입증된 일반의약품을 중심으로 의료급여 환자 등 일부 환자에게 성분명처방을 적용하는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이라고 본다. 물론 치료 결과에 영향을 주지 않는 선으로 제한해야 할 것이다.

일부 복지 전문가들은 어떻게 의료서비스를 차등 지급할 수 있냐고 반박하지만, 보건의료 재정이 한정돼 있음을 고려한다면 국민의 입장에서 돌파구를 생각해봐야 한다. 이에 대한 국민의 동의도 구해야 하며, 가능하다고 본다.

계속해서 모든 사람이 고가약을 고집하고 이대로 약값이 계속 올라간다면 우리 전체 생활비에서 약제비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날 것이다. 적절한 수준의 지출이 필요하다.

-시범사업을 하기 전과 하고 나서 달라진 생각이 있나 .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그 안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에게 동기부여가 제대로 안 된 상황에서 새로운 제도를 강요하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실제로 시범사업 과정에서 요일별로 성분명 처방률의 차이가 많이 났는데, 전문의마다 처방을 하고 안 하고의 차이가 뚜렷했다는 뜻이다. 새로운 제도가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기본적인 인프라가 잘 구축돼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의사와 환자 간 신뢰가 없는 상황에서 성분명처방을 하게 되면 서로에 대한 불신과 오해만 생기게 된다. 의사와 환자의 신뢰가 쌓여 있는 상황에서라면 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자유롭게 성분명처방을 할 수 있고, 환자 역시 이러한 의사의 처방을 믿고 따를 수 있을 것이다.

-시범사업을 진행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

초반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 난감했고, 지난해 6월부터 관심이 많아지면서 1년전 쯤부터 힘들어졌던 것 같다. 무엇보다 가장 스트레스를 받았던 부분은 성분명 처방률이었다. 욕심같아선 평균 50% 정도가 나왔으면 했는데, 너무 높은 것 아니냐는 오해와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통계적으로 의미있는 수준의 처방률이 나와야 앞으로 품목을 더 확대해서 진행하자느니, 기간을 연장하자느니 등의 말이 안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의료계의 반발이 거셌다.

국립의료원 현판에 계란이 던져지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도 여기저기서 전화를 많이 받았다. 그 때도 같은 마음이었지만, 그분들의 심정을 이해한다. 나도 의사인데 성분명처방은 강제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국립병원장으로서 안전성이 충분히 입증된 약들에 한해 시범적으로 해보라는 지시마저 거부할 수는 없었다. 정말 아닌 것은 목숨이라도 걸고 못하겠다고 하는 게 맞지만 이번 시범사업은 그 정도는 아니었다고 판단했다.

-과거의 사례를 볼 때 별 것 아닌 것 같은 사업도 결국엔 정치적인 상황에 따라 의도와 다르게 활용되는 경우가 있지 않나.

당시 보건복지부는 성분명처방에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대통령이 약속을 한 데 대해 국정감사 때 두 차례 질의가 있었고, 장관이 긍정적으로 답변했다. 사실 성분명처방 시범사업은 정치적 상황에 의해 시행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번 정부는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다. 만일 정부가 시범사업 결과를 토대로 성분명처방을 확대 시행하겠다고 하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적극 설명하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의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먼저 의료원 내부 의사들에게는 어찌됐든 끝까지 사업을 마칠 수 있도록 도와줘 고맙게 생각한다. 다른 동료 의사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든다. 성분명처방은 현재 상황에선 불가능한 측면이 있는데, 같은 의사로서 이에 대한 시범사업을 진행했기 때문에 심려를 끼쳤다고 생각한다.

 
의협신문 김은아기자 eak@kma.org  
입력: 2008.07.18 1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