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의 2009년도 수가협상이 결렬되었다. 현행 수가계약체계는 공급자와 보험자의 동등성과 상호존중을 통한 협력적 제도 운영과 거리가 먼 일방적인 굴복을 강요하는 비민주적인 체계이기에 원칙적으로 협상이라는 것이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정부에서는 적어도 민주적 원칙에 근거하여 공정성과 적정성을 기준으로 협상에 임할 것이라는 전제 하에 본회는 성의 있게 협상에 임하였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비민주적인 시스템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올해도 여지없이 계약은 성사되지 못했으며, 새 정부는 과거의 모습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구태를 보였다.
대한의사협회는 9월 25일 1차 협상을 시작으로 10월 17일까지 협상을 진행하였다. 그러나 올해도 예외 없이 계약이 이루어질 수 없었다. 건강보험 의료행위에 대한 적정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보험자와 더 이상의 논의가 불가능하였기 때문이다. 수가 계약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보험자의 입장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보험자인 공단의 재정운영위원회라는 조직에서 수가계약의 지침을 정하고, 의료계에 통보하고 이를 수용하지지 않으면 건정심에서 다수결로 결정지으면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GDP의 6%만 의료비(급여, 비급여 포함)로 지출하고 있지만 OECD 국가들의 의료비 평균 지출은 10% 수준이다. 이런 우리나라의 의료서비스의 질적 수준과 성과는 세계 5위라는 것은 정부에서도 익히 인정하고 있는 바이다. 즉, 의사들의 무한한 희생으로 선진국 수준의 의료서비스가 이루어져 왔음에도 이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더 의사들의 끝없는 희생을 강요해온 것이 역대정부의 역할이었다.
이 시점에서 우리 대한의사협회는 다시금 수가 인상의 당위성을 논하지 않을 수 없다. ’08년 상반기 평균 임금상승률은 5.1%로 전년 동기대비 0.3% 상승했으며, 연도별 추세를 볼 때 5% 내외의 안정적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더욱이 보건복지 분야 종사자는 전년대비 7.1%의 임금총액 증가로 동기 소비자 물가 상승률(4.8%)보다 높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덧붙여 지난 노무현 정부 5년간 평균수가 인상률은 2.8%로 평균물가 상승률에도 턱없이 모자라는 저수가로 일차의료 경영의 심각한 압박요인이 되어왔다.(’04년 2.65%, ’05년 2.99%, ‘06년 3.58%, ’07년 2.30%, ’08년 의과 2.3%)
이 모든 것을 차치하고라도, 심평원의 보고서에서도 제시되었듯이 의과의 원가 보전율이 70%대이며, 타 직능의 경우에는 100%를 초과하는 경우도 있음을 정부는 알고 있다. 객관적인 자료마저 협상과정에서 전혀 반영되지 못하는 현수가 계약의 부당성과 오류를 정부는 인정해야 할 것이다.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워 온 국민이 고통분담을 하여야 할 때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적정수가를 한 번에 이루기는 어려워도 지나간 시간동안 지나친 저평가를 극복하기위해 최소한의 수준으로라도 접근하며 공정한 계약이 이루어지길 기대했었다. 그럼에도 이번의 수가계약 과정은 직능간의 공정성마저 지켜지지 않아 문제가 심각하다.
공정성을 지키면서 최소한의 적정수가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가입자 대표들과 보험자의 태도에 우리는 심히 우려스러움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현재의 저수가 체제가 지속된다면 일차 의료가 몰락하여 의료의 왜곡현상이 더욱 악화되며 더욱 더 많은 국민적 부담을 가중시키며, 의료이용의 제한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렇기에 어려운 시기이지만, 의료전달체계의 근간인 일차의료의 적정수가를 도모하기위한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고 현 단계의 중요한 방향임을 우리는 감히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적정수가, 적정부담, 적정급여체계만이 왜곡되어가는 한국의 의료를 바로세우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외국의 어느 나라보다도 뛰어난 전문적 의료진들이 각기 전공을 포기하며 필수적인 의료서비스의 제공을 포기하고, 비필수적인 의료서비스로 생존을 위하여 내몰리고 있는 상황이 점점 더 심화되어가고 있다.
보건의료산업의 선진화를 주창하는 현실에서 건강보험 의료행위의 건전한 발전을 외면하는 선진화는 과연 어느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건강보험 의료행위의 발전을 통한 선진화가 아니라 건강보험 이외의 영역에서 더욱 더 선진화하자는 것이 이번 정부의 목표인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의료발전을 위해 묵묵히 헌신한 의사들의 일방적인 희생을 토대로 최고의 의료를 만들려고만 하는 정부는 국민에게 허황된 꿈을 심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제 건정심의 결정이 남은 이 시점에서 정부에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하나. 일방적인 통보에 불과한 허울뿐인 현재의 계약제도는 폐지하고 계약 당사자들의 자율과 책임에 근거한 동등계약제 정책을 마련하라.
하나. 적정수가, 적정부담, 적정급여체계만이 왜곡되어가는 한국의 의료를 바로세우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국민에게 정확히 밝히라.
하나. 최소한 이번 건정심에서는 대한민국 의료의 근간이며, 이미 붕괴의 길로 들어선 일차의료의 몰락을 막을 수 있는 적정한 수가 인상 결정을 하여야 한다.
위의 요구가 수용되지 않을 경우에 야기될 사태의 모든 책임은 정부와 보험자 가입자 대표들에게 있음을 밝힌다.
2008. 10. 18.
대한의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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