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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 지방서 개업 떡 돌린다 14339
이정돈 2007-11-09
《“서울에 남고 싶죠. 하지만 어떡합니까. 먹고 살아야죠….”

최근 인구 1만 명 정도인 전남의 한 도시에 의원 문을 연 김모(38)원장은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다.

당초 그는 서울에서 의대를 졸업한 후 레지던트 과정을 마친 뒤 서울 강남지역에서 개원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시장조사를 해 본 뒤 포기하고 서울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김 원장은 “대학에 들어갈 때부터 레지던트까지 16년간 젊음을 바친 결과가 ‘시골 의사’라는 것에 화가 날 때도 있지만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말했다.》

대도시 의료시장 포화상태… 의사들 ‘脫서울’ 러시

의원 수 증가율 옹진-보은군 順

“의원 늘어 좋네” 지방선 ‘대환영’

○ 지방에 의사 붐빈다

전문의 과정을 마치고 독립하는 의사가 지방 중소도시로 몰리고 있다.

과거에 의사는 개원하면 단기간에 큰돈을 버는 것이 상식이었다. 돈 대신 명예를 택한 일부 의사만 학계에 남았다.

그러나 최근 대도시 의료 시장이 포화 상태에 접어들어 이익을 내기 어려워지면서 경쟁이 덜한 지방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 치과의사와 한의사도 사정은 비슷하다.

본보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받은 2005∼2007년 전국 지역별 의원 현황을 분석한 결과 이 기간 인구 10만 명당 의원이 가장 많이 늘어난 지역은 인천 옹진군으로 88.1%의 증가율을 보였다.

다음은 충북 보은군(48.4%), 경남 산청군(31.9%), 충북 청원군(31.1%), 경남 합천군(25.2%), 경북 군위군(24.4%),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23.5%), 경남 함양군(20.7%), 경남 창녕군(18.5%), 전북 진안군(17.1%) 등의 순이었다.

이 때문에 지방 환자들이 받는 의료 질은 개선되고 있다.

경기 북부의 농촌지역 내과의원에서 만난 40대 남성 환자는 “예전에는 병원이 멀어 몸이 아파도 갈 생각을 못했는데 이제는 서울에서 환자를 돌보던 ‘실력파 의사’가 동네에 있어 마음이 든든하다”고 말했다.

○ “자식은 의대 안 보낸다”

경쟁이 심한 대도시를 벗어났다고 해서 의사의 소득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인구 4만 명 정도인 경기 북부지역 도시에 최근 외과의원을 연 박모(50) 원장은 1990년대까지 서울에서 의원을 운영하며 안정적 생활을 했다.

그러나 2000년에 급격히 사정이 악화돼 서울을 떠난 뒤 최근까지 연고도 없는 지방을 옮겨 다니며 네 차례 개원과 폐원을 반복했다.

그는 한때 개원의 생활을 포기하고 한 지방 종합병원에 외과 과장으로 취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병원마저 경영이 어려워지자 올해 초 3억 원의 빚을 내 다시 개원을 해야 했다.

2002년경 지방에 의원을 차렸을 때에는 약국이 주변에 없어 환자가 덜 온다고 보고 불법으로 약사를 고용해 병원 옆에 약국까지 차렸다. 하지만 임차료와 약사의 월급을 감당하지 못해 결국 병원과 약국 문을 모두 닫아야 했다.

박 원장은 “월수입은 200만∼300만 원 수준이지만 이제야 조금 안정된 것 같다”며 “올해 의대에 입학하려는 아들은 고생시키지 않으려고 공대로 지망을 바꾸게 했다”고 말했다.

○ 의대 신증설이 ‘시골 의사’ 양산

시골 의사 급증 현상이 빚어진 이유는 정부가 1980년대 후반에 향후 보건의료 수요가 늘어 의료 인력이 부족해질 것으로 보고 의대의 신증설을 대거 허용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1985년 31개였던 의대와 한의대는 현재 52개로 증가했다. 입학 정원도 같은 기간 3230명에서 4050명으로 늘었다.

결과적으로 1990년대 초반부터 크게 증가한 의대 입학생들은 2005년을 전후해 개업할 시점이 돼 의료시장에 쏟아져 나왔다. 의사면허 소지자(한의사 포함)도 1985년 3만3385명에서 2005년 10만676명으로 3배 가까이 증가했다.

현재의 추세라면 2010년에는 의사가 12만 명을 넘을 것이라는 게 대한의사협회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의협 측은 의대 정원 감축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정부도 2004년부터 입학 정원을 축소하고 정원 외 입학 인원도 줄이기 시작했으며 장기적으로 의대 정원을 10% 감축할 계획이다. 그러나 “정원을 30% 줄여야 한다”는 의협과 의견 차가 커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나성엽 기자 cpu@donga.com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권혜진 기자 hj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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