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주 이야기 8
-항주 황산 관광 이야기로 지인들에게 메일로 보내던 것인데 시리즈인데 즉흥적으로 쓰는 것이라서 근래 것 한개만 올립니다.
서호, 마르코폴로의 예찬 ********************************
여행을 떠나라! 그러면 거기서 너를 발견할 것이다. 여행 예찬론자들의 말 중 하나다. 유명한 말중에 또 여행이란 보는 것이 자기가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도 자주 한다. 아무런 사전 지식이나 준비도 없이 가면 또한 보이는 것도 의미도 그만큼 적을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역마살이 많이 낀 사람들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여행 가이드들이 보면 그런 기질이 있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주위 사업차 중국이나 해외 제집 드나들듯이 하는 사람들도 많으니 이젠 세계 교류가 시공간적으로 너무 가까워졌으니 금석지감이 새롭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도 있으나, 장점만 말하라면 다른 지역에 풍경과 다른사람들이 사는 것을 보면 권태와 타성에 젖은 자신과 다른 새로운 시야를 깨닫고 의식을 재충전하며 넓은 안목을 보는 기회를 가진다.
항주 놀러가기 가장 좋은 때는 봄 3-4월이라고 한다. 물론 다른 곳도 꽃피고 새우는 춘삼월이 좋은 때긴 하다. 여름엔 너무 습하고 더워 힘들고 겨울에는 좀 쌀쌀하고 보통 같이 관광 스케쥴로 들어가는 인근 황산에는 눈까지 오는 수가 있어 입산이 통제되기도 한다.
서호는크기로 보면 태호나 동정호 같은 큰 호수는 아니다. 그렇다고 풍경도 계림이나 구채구 같은 명승과 비교하면 더욱 실망할 것이며 평범할 수도 있다. 그러나 평야 도시지역 인근에 있다보니 오랜 역사와 얽힌 의미와 얘기가 많으며 수도로 여러번 했던 강남의 고도 항주 덕에 더 알려지게 된 것이다.
예로 원나라 시절에 마르코 폴로가 와보고 천하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예찬하였다고 한다. 마르코 폴로가 역마살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인생을 가졌다. 물론 이븐 바투타 같은 사람도 만만찮으며, 그는 모로코 출신 무슬림으로 터어키, 아라비아, 이란, 인도 거쳐 바다로 가서 중국 남부 도시까지 평생을 여행하여 여행기를 남겼다. 도중에 인도 남부 아름다운 열대 섬지역에 가서는 마누라를 3명이나 데리고 일년정도 살기까지 하였다. 그는 베네치아의 중동지역과 교역하던 상인 집안에 태어나 17세 때 아버지와 숙부따라 33년간 걸린 먼 국외 여행을 떠났다. 당시 징기스칸 이후 동으로는 현재 중국 지역, 만주, 고려지역, 서로는 러시아, 동유럽 ,아라비아반도까지 광대한 지역을 통일하여 손자 원나라 쿠빌라이 칸 때는 전성시대를 맞고 있었다. 징기스칸은 10만의 군대로 동서를 통일하였는데 역사상 가장 넓은 지역이었으며 인종 종교를 가리지 않고 인재를 썼으며 항복한 군대는 몽골군과 같이 대우하였고 요나라 사람 야율초재를 재상으로 , 이슬람 상인을 외국 사절로 보냈으며 정복한 지역은 그 곳의 종교와 풍습을 인정하고 통치를하여 광대한 지역을 통치할 수 있었다. 당시 유럽 침공때 전 유럽이 공포에 떨었으나 징기스칸이 사망하자 후계자 선출을 위한 유목민 전통의 쿠릴타이 대회로 각 아들들과 족장들이 몽골에 모임으로서 영토 확장이 중단되었다. 손자 쿠빌라이 칸은 뒤를 이어 중국을 정복하고 수도를 중국 내부로 하였으며 다른 지역들은 일족인 다른 칸들이 통치하는 상태였다. 어느 정도 평화가 찾아오자 그는 로마와 교류할 필요가 있었으며 , 마르코 폴로는 1271년에 당시 교황인 그레고리우스 10세에게 신임장을 받아 아버지와 삼촌 그리고 두 명의 수사를 따라 몽골제국으로 떠나게 된다. 당시 통일제국 몽골 덕에 동서교역로가 활성화되어 중국 여행도 호기를 맞게 된 것이다. 나중에 두 명의 수사가 중간에서 장기 여행을 포기하여 남은 폴로 가족만이 여행하게 되었다. 그들은 육로로 서역지역인 타클라마칸 사막 남쪽 오아시스인 케르만·타브리즈·발크·야르칸·코탄·차르찬 등 지역을 지나 중국 하서(河西)지방에 이르러 감주(甘州)지역에서 1년 머물렀다고 한다. 그 뒤 1274년 상도(商都)에 도착, 쿠빌라이 칸을 만나 성유(聖油)와 교황의 편지를 바쳤다. 그리고 마르코 폴로는 자신이 쿠빌라이의 신하로 17년 동안 원나라에 머물렀다. 당시 색목인이라고 불리는 코카시아, 서역계 사람들도 많이 정국에 참여 하고 있었으므로 그도 이때 원나라에서 관리로서 일을 하였고 중국 여러지역을 많이 다녀 이 지역도 왔을 것으로 보인다. 송나라가 금나라에 밀려 남쪽으로 천도(남송)한 뒤 이 인근이 수도(임안)였으며 금나라 멸앙당하고 뒤 장기간 전쟁 끝에 쿠빌라이 칸이 몽골 권력을 장악 한 뒤 침공하여 결국 1276년 몽골의 장군 바얀에 의해 여기 임안(항주)이 함락되어 원나라에 멸망하였다. 그래서 할주에 관광지로 송나라 거리와 성 등 모습을 갖춘 테마 파크인 송성이 여행 코스로 있으며 가면 그 당시 군졸 모습과 성, 저잣거리, 연극 공연 등으로꾸며 놓았다. 그는 나중에 아라비아 지역의 일 한국의 왕인 아르군 칸에게 시집가는 공주 코카친의 아내자로 선임되어 중국 천주(泉州)에서 출발하였다. 바다의 긴 항해 끝에 자바, 스리랑카, 인도 등을 지나 이란 호루무즈 지역에 도착하였으니 얼마나 오랜 기간 배를 탔을 까? 그러나 칸이 이미 죽은 뒤여서 공주를 그의 아들에게 인계하고 콘스탄티노플을 거쳐 고향인 베네치아로 17세에 나간 뒤 50이 되어서야 돌아왔으니 당시 나이로는 이미 노장층이 된 것이다.
-동방견문록 중 한 장면(사진은 인용함):남방지역 싸움:미얀마의 왕의 군대가 코끼리를 동원하여 원나라 군대를 공격하고 있다.
그의 동방견문록은 이탈리아에 49세에 돌아와서 베네치아와 제노바의 전쟁중 포로로 잡혀 감옥에서 구술하여 다른 저자가 쓴 것이며 일부는 과장과 허구가 많이 있었으나 유럽에 신비로운 동양을 소개하는 책으로 많은 인기를 끌었다.
| 유람선은 열심히 관광객을 태워 물위를 떠다니고... | |
| 인생의 끝을 모르는 듯.. 젊은 청춘들은 사랑에 겨워 한때 노젓기에 바쁘다.
남국의 호반, 무성한 숲에 수양버들 늘어지는데 .. 사람들이 나와 휴식을 취하고 있다.
Dr.Sung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