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인가 복지인가` 갈 곳 잃은 국가건강검진제도 | 14491 | ||
김기범 | 2019-04-21 | ||
`의료인가 복지인가` 갈 곳 잃은 국가건강검진제도
|초점|전문가들 비효율성 지적...생애전환·암검진 등 중복 심해
이인복 기자 (news@medicaltimes.com)
기사입력 : 2019-04-08 06:00
계속해서 항목과 수진자가 느는데 반해 임상적 유용성은 뒤로 밀려나면서 수진자들조차 이를 신뢰하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 따라서 이참에 한번 제대로 평가하고 바꿔야한다는 목소리가 슬슬 나오고 있다. 이중, 삼중 중복되는 항목들…`전 국민 대상 설계 한계` 이로 인해 이 검진에는 비만 등 기초 항목부터 당뇨병, 고혈압 등 만성질환, 다발 암 등 총체적인 내용들이 모두 포함돼 있었고 이에 대한 효율성은 그리 논란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2008년 건강검진기본법이 태동하면서 영유아검진, 생애전환기 검진, 암 검진 등 국가가 주도하는 건강검진이 계속해서 확장되면서 문제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포괄적인 검사를 진행하는 일반검진의 항목은 그대로 둔 채 이 모든 검진 항목을 새로 짜다보니 결국 이중, 삼중으로 항목이 겹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여기에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주도하는 이들 검진이 아닌 지방자치단체나 교육부가 진행하는 의료급여 대상자 검진, 노인건강진단, 치매조기검진, 청소년 건강진단, 근로자 건강진단 등이 더해질 경우 항목이 중복 현상은 더욱 심화된다. 가령 직장에 다니고 있는 45세 남성의 경우 일반건강검진에서 받은 검사를 생애전환기 검진, 국가 암 검진, 근로자 건강진단에서 또 다시 중복적으로 검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김영식 질병관리본부 검진항목평가 분과위원장은 `국가 검진이 복지의 개념에서 시작하다보니 일단 항목에 한번 포함되면 이를 축소하거나 삭제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며 `결국 새롭게 국가검진 프로그램이 생겨날때마다 항목이 중첩될 수 밖에 없는 한계가 나오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욱이 만약 이러한 수진자가 만성 질환이나 암을 앓고 있다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 사업과 같이 암과 만성질환 환자들을 위한 국가적 프로그램이 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만관제 사업에 참여해 주기적으로 당뇨병 관리를 받고 있다 해도 일반검진과 생애전환기 검진, 근로자 검진 등에서 당뇨 검사를 또 다시 받는 비효율적인 재정 낭비가 일어난다는 의미다. 김영식 위원장은 `질본과 건보공단의 통계를 보면 고혈압의 경우 21%, 당뇨병 환자는 9%가 치료를 받고 있는 가운데서도 의무화된 국가검진에 응하기 위해 또 다시 검진을 받고 있다`며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구성하다보니 나타나는 한계점`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복지적 측면에서 접근해 어쩔 수 없이 이들 항목들을 유지해야 한다면 적어도 불필요한 재정이 낭비되지 않도록 해당 검사와 비용이 유사한 다른 선택적 항목에 대한 검진 바우처를 지급하는 등의 방법을 생각해 볼 시점`이라고 제안했다. 재정 효율화에 밀린 임상적 유용성…일각선 관련 연구 한계론도 이렇게 이중, 삼중으로 항목이 중첩되는 문제는 비단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재정이 새다보니 정말로 임상적으로 유용한 항목들이 검진에 포함되지 못하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지난 2018년 정부가 이러한 의견들을 반영해 내놓은 국가건강범진제도 개편 방안도 마찬가지의 지적을 받고 있다. 중복되는 항목을 조정하고 근거가 부족한 검사 항목을 조정하는 대신 지질 검사 등의 검진 주기를 조정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실제로 복지부는 이번 개편으로 지질검사 즉 고지혈증에 대한 항목을 과거 2년 주기에서 4년 주기로 연장했다. 질병관리본부가 시행한 연구 용역 결과 4년 주기로 해도 큰 차이가 없다는 결론에서다. 그러나 실제 임상 전문가들은 이러한 조정이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가져올 수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세계적인 흐름과도 역행한다는 비난이다. 대한임상순환기학회 김한수 회장은 `영국 NHS가 지질검사를 1년 단위로 진행해야 한다는 보고를 내놓는 등 세계적으로 지질 검사의 주기를 좁혀가는 추세`라며 `하지만 우리나라는 국가검진에 포함돼 있던 항목조차 주기를 늘리는 이해할 수 없는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심뇌혈관 질환에 대한 유병률과 사망률이 크게 오르고 있는 시점에 오히려 주기를 줄이지는 못할 망정 어떻게 이를 늘릴 수 있는지 모르겠다`며 `불과 10년만 지나도 얼마나 큰 실책을 했는지 각종 지표가 보여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로 인해 전문가들은 검진 항목 조정의 기반이 되는 연구에 대해서조차 의구심을 갖고 있다. 대한검진의학회 이욱용 상임고문은 `이번 연구 용역 결과도 고지혈증에서 가장 중요한 지표인 LDL을 제대로 분석하지 않고 총 콜레스테롤로 분석을 하면서 엉뚱한 검진 주기가 나오게 된 것`이라며 `적어도 LDL과 HDL의 추이를 봤어야 하는데 총 콜레스테롤만 추적하니 4년에 한번만 해도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나온 셈`이라고 꼬집었다. 결국 이러한 연구 용역을 주도하는 연구팀이 임상에 참여하는 의사들보다는 연구자들로 꾸려지면서 검진 제도가 산으로 가고 있다는 비판이다. 대한검진의학회의 또 다른 임원은 `지금 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 등에서 진행하는 연구를 도맡고 있는 구성원들이 의사라고는 해도 임상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 아니냐`며 `결국 임상을 하나도 모르는 사람들이 검진 제도를 주무르니 이러한 상황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보건복지부 등 정부 부서들도 일정 부분 공감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검진 제도 자체가 설계될 당시부터 복지적 측면으로 접근하다보니 복지부 차원에서 해결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정영기 보건복지부 건강증진과장은 `검진 항목 하나만 조정을 해도 국민들은 복지 혜택을 뺏긴다고 생각하고 사업자는 회사 부담이 늘어난다고 항의를 한다`며 `의료계 내부에서조차 검진기관들의 수익성과 의학적 근거가 부딪히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아울러 그는 `국가 검진 자체가 예방의학적 근거보다는 복지 혜택으로 시작했고 지금도 정부와 국민들은 이러한 프레임을 가지고 있다`며 `의학 전문가들이 계속해서 근거를 중심으로 문제를 제기해주고 이러한 것들이 제도에 반영될 수 있는 통로를 만든다면 조금씩이나마 바꿔갈 수 있지 않겠냐`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