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신뢰 높은 집단…단체예접, 건강위협
일부 단체나 기관의 인플루엔자 단체 예방접종으로 요즘 화가 잔뜩 난 김일중 대한개원내과의사회장은 지난 2005년 회장에 선임된 후 올해 연임돼 4년째를 맞는다.
|
김일중 개원내과의사회장 |
김 회장은 의료계에서 말을 앞세우지 않고 할 일은 제대로 하는 성격 탓에 ‘신사’로 통한다. “불과 1년전에 의료계를 공황으로 몰고 간 정치권 로비파문도 알고 보면 설화(說禍)사건이 아닙니까”
김 회장의 ‘신사’ 뿌리는 한학자인 할아버지와 교육자인 아버지에 닿아 있다. 그는 초등학교 입학전부터 아직 조선의 선비 정기를 고스란히 간직한 할아버지로부터 천자문, 학어집, 소학 등은 한학을 익혔다.
“어렵기는 하지만 한학이 재밌었어요. 특히 성종때 사람인 박세무가 왕실교육용으로 지었다는 ‘동봉선습’은 저의 ‘선비’ 정신을 일깨우는데 가장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김 회장은 ‘동봉선습’이 사람의 몸과 마음에 대한 인식, 즉 인간관에 바탕을 둔 교육서라고 설명한다. 어릴 적 읊은 한학이 ‘자기 눈앞의 이익에 연연하지 않고 곧고 타협을 모르는 ’선비 정신‘을 일깨웠고 초중고와 의대 등 현대교육을 거치면서 ’신사‘로 변모한 것이다.
“저는 의사들이 선비집단이라고 불려지는 것을 좋아합니다. 우리나라 많은 단체 가운데 신용도가 가장 높고 선비성이 강한 집단이 의사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김 회장은 눈앞의 이익을 좇지 않고 타협을 잘 모르는 대다수의 의사가 선비정신과 일맥상통한다는 해석한다.
‘진인사 대천명’(盡人事 待天命). 그가 제일 좋아하는 한자 성어이자 인생 좌표다. 장삼이사(張三李四)도 아는 평범한 문구로 실천이 그리 녹록치 않지만 자신은 평생을 가슴에 실천덕목으로 품고 살아왔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큰 감투는 아니지만 내과 공보이사, 대한개원의협의회 공보이와 부회장, 서초구의사회장, 내과의사회 부회장 등이 맡겨지면 한 번도 피하지 않았습니다” 최선을 다하자는 그의 지론은 의료계 현안처리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지난해 9월경 정치권이 추진한 "의료피해배상법" 입법 당시 상임위 통과가 사실상 확정된 급박한 상황에서 당시 평소 알고 지내던 여당의 중진들에 매달려 막판에 법안 처리가 극적으로 보류된 후일담이 바로 그것.
“조금 안다는 이유로 새벽까지 전화통을 붙들고 "의료계가 다 죽는다, 국민들도 결국 피해를 볼것이다" 라고 호소했습니다. 진인사 대천명의 자세로 말입니다” 김 회장의 선비 정신이 당시로써는 ‘부자’에 속하는 부농 출신이라는 생활환경이 영향을 끼쳤음은 물론이다.
“초등학교 5학년때 고향 나주에서 광주로 유학을 했어요. 나주에서는 당시 명문인 광주서중을 입학할 수 없다는 아버지의 성화 때문이었지요” 하지만 가난한 농촌을 목도한 젊은 고등학생(광주일고)의 꿈은 농촌개혁가로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농촌이 어려웠기 때문에 서울농대를 가려고 했어요. 못 먹어 부황기(얼굴이 부어오름)나 보릿고개를 보면서 농촌을 잘살게 해보자는 생각이었지요” 김회장은 그러나 “농대가려면 대학 포기하고 농사나 지어라”라는 아버지 말씀에 농민의 꿈을 접고 의사의 길을 택했다.
꿩 대신 닭이지만 전남대 의과대학(67학번) 시절, 그는 또 한 명의 선비를 발견한다. “당시에는 의원이 없는 곳이 너무나 많았어요. 의대 교수들을 중심으로 섬이나 오지로 의료봉사를 가는데, 개원하신 동문 한분이 의원 문을 닫고 1주일씩 봉사를 하더라구요”
그런 모습이 참 신기했다는 김 회장은 지금도 닮고 싶은 옛 모습으로 추억하고 있다. 어려운 내과 환경, 의사를 압박하는 의료정책 등 현안 문제엔 그도 목청을 높인다.
“전국적으로 내과 의원이 4000여개 정도 있는데, 하루 내원환자가 50명도 안되는 곳이 75%나 됩니다. 50명이 손익분기점인데 품위유지비는 고사하고 월급조차 챙기지 못하는게 현실입니다”
그런데다 간호사, 조무사, 임상병리사, 방사선사 등 의료인들의 인건비가 너무 상승한데다 무엇보다도 구하기조차 너무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이런 와중에 일부 단체나 기관에서 인플루엔자 단체 예방접종을 하겠다고 나서니, 어느 의사가 달가워하겠느냐고 반문한다.
“일부 단체에서 단체예접을 하면서 불법으로 광고를 하고 있어요.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다면 그나마 이해할 수 있지만 선착순으로 모집하니 불법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김 회장은 단체예접이 근본적으로 부작용을 일으킬 소지를 안고 있다고 강조하고 환자 건강을 위해서도 적절한 시설을 갖춘 병의원에서 실시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계란 알러지가 있으면 인플루엔자 백신을 놓아서는 안됩니다. 열 채크 등 의료적 진단도 없고 부작용이 생기면 응급조처도 할수 없는 단체예접은 선진국 진입을 노리는 우리나라에서는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 회장은 정부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내달부터 동일성분 중복처방이 금지되는데 환자들이 불편할 것이라고 벌써부터 하소연하고 있어요. 수돗물이 내일 안 나온다면 물을 미리 받아놓지 않습니까. 재정을 절감하려는 속셈이지만 절대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김 회장은 이제 1년 반가량 남은 내과의사회장 재직기간동안 개원내과에서 건강검진을 많이 받을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는데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건강검진을 할려면 500mA X-레이 등 일정한 장비나 인력을 갖춰야 하는데 고가장비는 위탁해서 데이터를 받아 대부분의 내과에서 검진을 할 수 있는 방안을 현재 연구중입니다”
김 회장은 뒤에서 중얼거리는 행위는 아무 소용없다고 말하고 의료계나 정부에 불만이 있으면 참여해서 행동하자고 의료계와 후배들에게 권했다. 김 회장은 지난 80년 서울 서초2동에 소재한 150여평의 자기소유 대지에 김일중 내과의원을 짓고 18년째 환자를 보고 있다.
<김일중 회장 이력> △전남의대 졸업(1973년) △전남의대 의학석사 수료(1976년 2월) △내과전문의자격 취득(1978년 2월) △전남의대 의학박사 수료(1979년 8월) △기독병원 내과 과장(1980년 4월) △김일중 내과 개원(1980년 5월-현재) △한양의대 외래교수(1992년 4월-현재)△대한개원의협의회 총무이사(2002년 10월) △경희의대 외래교수, 성균관의대 외래교수(2002년 2월-현재) △서울 서초구 의사회장(2003년 3월) △서울시내과개원의협의회 회장(2003년 3월) △대한내과개원의협의회 회장(2006년 5월-현재) △대한위장내시경학회 이사장(2006년 5월-현재) △대한내과학회 부회장(2006년 5월-현재) △대한개원의협의회 부회장(2006년 7월-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