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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전북내과의사회의 역사
2021-12-30
작성자 사무국 [ID: po77***]

전북내과의사회의 역사

 

이 글은 대한내과의사회의 기록, 전북내과의사회 회계장부, 회기별 회장 또는 총무이사 인터뷰를 근거로 작성하였으며, 맨 마지막의 글은 저의 주관적인 입장(. 표기)에서 적었으므로 해석의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인터뷰 및 작성 :김기범)

 

 

(1대회장 홍기방, 총무 이병철) 1999 - 1999. 3.16. 1차 정기총회

 

(2대회장 김문중, 총무 강원택) 2000

 

(3대회장 허기석, 총무 김진홍) 2001-2002

 

(4대회장 양형식, 총무 장명규) 2003-2004. 3

 

(5대회장 권철, 총무 김종구) 2004. 4. 2005-2006

 

(6대회장 권철, 총무 이제경) 2007-2008

 

(7대회장 김해강, 총무 이영승) 2009-2010

 

(8대회장 김진홍, 총무 유운용) 2011-2012.8

 

(9대회장 송하숙, 총무 신봉주) 2012.8.-2013- 2014

 

(10대회장 장명규, 총무 천기태) 2015-2016

 

(11대회장 이영승, 총무 황호근) 2017-2018

 

(12대회장 유운용, 총무 이태관) 2019-2020

 

(13대회장 신봉주, 총무 김기범) 2021-2022

1999년 이전에 전북내과의사들은 시군별로만 모임을 하고 있었으나, 의약분업을 계기로 전라북도개원내과의사회(이하 본회)를 구성하였다. 1999년에 1년 임기로 전주시개원내과의사회를 이끌고 있던 홍기방회장(전남대졸)과 이병철총무(한양대졸), 의약분업투쟁을 계기로 전라북도개원내과의사회 명단을 정리하게 되었고, 본회를 대표로 대한개원내과의사회 회의에 최초로 참석하였다.

하지만 명단작성이후에, 총회는 진행하지 못하고 임기를 넘겼다. (. 당시 교통 및 통신수단이 원활하지 않아서, 의사회가 활성화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record as 이병철총무 said

 

2000년 본회(회장 김문중)는 의약분업으로 혼란을 겪었다. 회장은 주로 서울로 상경하여 의권투쟁과 함께, 회원들과 많은 토론 모임을 개최했다. 그러나 의약분업이라는 큰 흐름때문에 내과의사회 이름보다는 전라북도의사회 주도로 모임을 갖는 경우가 많았다.

대내적으로는 봄가을에 전주시내과 20-30여명의 회원을 중심으로 세미나(학술대회는 아님)를 개최하였다. 당시에는 Overhead-Project로 비춰 강의를 하던 시기였고, 연수평점도 없어서 관련 자료를 남기기는 어려웠다.

 

- record as 김문중회장 said

 

2001년 본회(회장 허기석)는 회장임기를 2년제로 변경하였으며, 전주시를 중심으로 정기적인 모임을 개최하였다. 이때까지는 회원들에게 엽서와 편지 등의 우편으로 행사를 안내하였다.

대외적으로는 대한내과학회 전북지회 춘계학회를 대학병원과 협조하여 추진하였다. 대학병원과 개원내과가 학회를 함께 추진하자는 제안은 전북대학교병원 이양근교수가 먼저 하였으며, 실질적인 학회운영은 이양근교수가 주도하였다. 이때까지는 본회가 학술대회 개최실무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았으며, 학회에 참석하는 개원내과 회원도 20-30명 정도였다.

 

- record as 허기석회장 said

 

2003년 본회(회장 양형식)는 회무운영에서 여러 가지 기틀을 마련하였다. 상임이사회를 분기별로 코아호텔(과거 코아백화점 위치)에서 개최하였고, 상임이사회의록도 작성하였다. 이때부터는 지역 시군회원들도 상임이사회에 정기적으로 참석하였다(군산 전성주, 김제 유운용, 남원 이동욱 등). 하지만 의사회의 재정난으로, 운영에 어려움이 많았다. 당시 양형식회장은 본회와 전주시의사회장을 겸임하고 있던 중에, 전라북도의사회장으로 선출되면서 1년여 만에 조기에 퇴임하였다.

 

2003년에는 대한내과학회 전북지회 춘계학술대회 주최하였고, 추계학술대회는 대한내과학회 전북지회가 맡기로 하였다(이전에는 춘계 및 추계를 모두 개최). 장명규총무가 학술대회를 직접 준비하고, 대한의사협회 평점도 신청하였으며, 90-100명의 회원이 학회에 참석하였다. 장명규총무는 이후로 회장단에 비전북대 출신이 선임되는 계기가 되었다.

 

대외적으로는 대한개원내과의사회 행사에 회장과 총무가 참석하였으며, 또한 전국시도내과의사회장단 모임을 최초로 전주에 유치하고, 장동익 대한의사협회장후보의 선거운동을 독려하였다. 대한위장내시경학회(2017년 대한위대장내시경학회로 개명)가 창립되어, 자연스럽게 위장내시경학회 전북지회를 구성하였다. (. 전북내과의사회가 구성된 것은 1999년이지만, 실제로 전라북도 내과의사 전체가 참여하여, 실질적으로 대표하는 단체가 된 것은 2003년 이후라고 볼 수 있음.)

 

 

- record as 장명규총무 said

 

2004년 봄부터 본회(회장 권철 2004-2008)는 전임회장이 조기에 퇴임하면서, 새롭게 회장을 선임하였다.

 

권철회장은 대한내과 장동익회장(3,4대회장)시절, 대한의사협회장 선거운동에 적극참여하고, 장동익후보가 의협회장에 당선되면서 대외적인 활동을 많이 하게 되었다. 이때 내과의원의 핵심문제인 만성질환관리료(AH200)를 신설(원외처방료가 없어지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진찰료 차등제도(가나다군으로 분류)가 생겼다가, 진찰료 차등제도 없어지면서, 만성질환관리료를 요구함)하고, 아미노산수액제의 임의비급여 문제를 해결하였다. 김일중회장(5,6)시절에는 타지역(부산,광주)에서 독점해오던 대한개원내과의사회 부회장을 맡았고, 이듬해에(2008) 대한개원내과의사회 2대 대의원의장에 취임하였다. 대의원의장시절에는 의원급에서 건강검진을 할 수 있도록 추진하였다. 대한내과이원표회장(7,8)시절에는 기존의 영상의학과가 주도하는 초음파학회에서 내과의사가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으로, 새롭게 대한임상초음파학회를 창립하도록 주도하였다. 대한내과이명희회장(9)시절에는 임상초음파 CMI 교육의 전주유치에 힘을 보탰다. 최성호회장(10)시절에는 본회 송하숙 고문의 감사선출 및 대의원부의장 선임에 기여했다.

 

대내적으로는 회원들의 참여가 본격화되었다. 기존에 개최하던 대한내과 전북지회 춘계학회를, 전북내과의사회 춘계학술대회로 변경하였으며, 200명 가까운 회원들이 참석하는 행사로 발전시켰다. 또한 본회는 2007년부터 대한위장내시경학회 전북지회 추계학술대회(정기총회를 겸한 행사)를 최초로 개최하면서, 명실상부하게 연 2회의 학술대회를 개최하는 의사회로 자리매김하였다. 어려운 의사회재정에도 불구하고, 3개병원(전북대병원, 원광대병원, 예수병원)100만원씩 기부하였고, 이사회 거마비 지급(전주외 지역)도 시작하였다. (. 권철회장은 역대 최장기간(4년반)동안 회장을 엮임하고, 고문으로서 본회의 발전에 크게 공헌함.)

 

- record as 권철회장 said

 

2009년 본회(회장 김해강)는 기존의 시스템을 유지발전시켰다. 상임이사회, 제약회사세미나, 학술대회도 계승하였다. 임기 중에 전국시도내과의사회장단 모임도 양반가에서 주최하였다.

 

- record as 이영승총무 said

 

 

2011년부터 본회를 이끌던 김진홍회장은 2012년부터 전주시의사회장을 겸임하게 된다. 이에 따라 전주시개원내과의사회를 이끌던 송하숙회장이 20128월부터 본회 회장으로 조기에 취임하였다.

 

전주시의사회를 이끌던 김진홍회장은 20147지역사회일차의료 시범사업을 전주시에 유치하고, 전국 최초로 사업을 시행하였다. 이 사업은 일차의료서비스 모형 개발을 통한 의료전달체계 재정립을 목적으로, 케어플랜과 질병교육 및 종합상담의 과정으로 구성되었다. 당시 본회(회장 송하숙)지역사회일차의료시범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으며, 이 사업은 일차의료만성질환관리시범사업이 시작되는 모형이 되었다.

 

본회 임기 중인 20122월에는 대한임상초음파학회 발기인에 참여하였고, 전국시도내과의사회장단 모임도 주최하였다

 

- record as 김진홍회장, 유운용총무 said

 

20128월부터 본회(회장 송하숙)는 회장이 외적인 부분을 담당하고, 총무가 대내적인 업무를 맡는 시스템을 다지게 되었다. 또한 본회의 회칙을 정리하여, 운영을 체계화하였다(내용은 임원게시판 참조, 대한내과학회 전북지회의 요구가 계기가 되었다고 함).

 

2012년 대한내과학회 전북지회(이사장 고재기)가 추계학술대회 개최를 포기함에 따라, 갑작스럽게 본회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추계학술대회를 개최하였다. 학술대회의 단절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으나, 갑작스러운 학술대회 개최로 인해 신봉주총무가 대내외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학술대회사건을 계기로 대학병원과의 소통의 중요성을 깨닫고, 대학병원 교수를 초대하여 골프대회를 개최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학술대회 끝나고, 후원의 밤 행사를 처음으로 개최하여, 학술대회에 도움을 준 제약회사 직원들에게 감사를 표하였다. 의사회 재정이 나아지면서, 회원들의 애사가 있을 때 조화를 보내는 회무를 이 시기에 시작하였고, 모든 이사들(전주지역 포함)에게 거마비를 지급하였다.

(. 이때 본회 회장이 골프대회의 비용을 부담하여, 대회가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하였고, 이것이 현재까지 전통으로 내려오는 중임.)

 

- record as 송하숙회장 said

 

2015년 본회(회장 장명규)는 전북대출신만 회장이 되던 관례를 깨고, 처음으로 원광대출신 회장을 선임하였다. 기존에 평일에 개최(평점 3)하던 춘계학술대회를, 토요일로 옮겨 확대개최(평점 5)하였다. 학술대회가 확장됨에 따라, 회원들이 본회가 개최하는 학회만 참석하여도 의무 평점(8)을 완수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금연치료를 위해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연수교육을 유치(전북대학교병원 임상교육센터)하여, 회원들의 편의를 도모하였다. 초음파가 산정특례질환에서 급여화됨에 따라, 대한임상초음파학회 CMI 교육도 전북으로 유치(9대 대한내과 이명희회장)하였다. 전국시도내과의사회장단 모임도 전주(리베라호텔)에서 유치하였다.

 

대내적으로는 회원단합을 위해 최초로 정회원대상으로 골프행사를 시행하였으며, 회장부담으로 푸짐한 참가선물도 제공하였다. 또한 기존에 하고 있던 대학교수와의 골프행사도 유지(4팀 구성)하는 등, 대학병원과의 유대관계를 돈독하게 하는데 힘썼다.(. 장명규회장은 원광대출신 최초회장으로서 본회가 균형된 인적구성을 하는데 기여하였고, 2003년 총무이사를 엮임하면서 본회의 기초를 닦았다고 볼 수 있음.)

 

- record as 장명규회장 said

 

2017년 본회(회장 이영승)는 학술대회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였다. 위대장내시경학회 초록집을 전국 최초로 컬러로 제작하였으며, 인문학강좌를 도입하였다(황호근총무 아이디어). 또한 학술대회에서 바코드시스템도입, 일용직도우미 채용 및 요양급여청구 책자를 제작하여 배포하였다.

대내적으로는 익산과 군산 지부를 방문하여 후원금지급과 함께 회원들과 단합을 도모하였고, 임원들 간의 친목을 위해 야외음악회를 개최(총무자택)하였다.

 

대외적으로는 개원내과의사회의 정치참여정책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여, 대한개원내과의사회(11대 김종웅회장) 감사패를 받았으며, KBS불우이웃돕기 성금기탁(500만원), 엄마의밥상 지원(축하화한 대신 쌀 또는 돈으로 받아 기부)사업을 시작하였다. 대한개원내과의사회 산하에 새로 생긴 보험정책단으로 보험이사(대한내과 보험이사 임명)를 파견하였고, 대한임상순환기학회(2018.4) 발기대회에 참여하였으며, 본회 회장이 전라북도개원의협의회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record as 이영승회장 said

 

2019년 본회(회장 유운용)는 회장 특유의 친화력으로 대외활동을 잘 수행하였고, 임원간의 친목을 돈독히 하였다. 특히 전국시도내과의사회장단 회의와 경남내과의사회 워크숍을 전주에서 개최하면서, 대외에 전주판소리 등을 소개하였다. 또한 박근태후보의 추천서를 작성하여 12대 대한내과의사회장 당선에 기여함으로써, 본회의 위상을 높였다.

 

2020년초에 생긴 코로나사태로 인해 회무가 모두 정지되어 운영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춘계학술대회를 7월에 안전하게 개최하는 성과를 이뤄냈고, 다른 회무도 무사히 진행하였다. 전 회기에 시작했던 엄마의밥상기부(500만원)사업도 유지하였다.

 

record as 유운용회장 said

 

 

2021년 본회(회장 신봉주)는 대한개원내과의사회가 대한내과의사회로 변경(2021.4.)됨에 따라, 전북내과의사회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에 따라 본회는 전라북도 내과전문의 전체(570여명)를 아우르는 단체로 거듭나게 되었다. 물론 현실적으로 아직은 내과전문의를 모두 포함하는 단체가 되기에는 부족하지만, 대내외적으로 성장할 계기가 되었다. 명칭 변경을 계기로 3개병원 내과과장을 자문위원으로 위촉하였으며, 3개병원 회원의 애사에도 조화를 보내기 시작하였다. 이외에도 홈페이지 변경개설, 단체카카오톡으로 빠른 정보전달, 인터넷뱅킹을 통한 회무투명화, 임원워크숍 최초개최, 고문회의 신설, 영수증 최초발급 등 많은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